요정이 베이커리에 침입하다!
캐나다 여름방학은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약 9주 동안이고,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신정 즈음까지 약 2주 동안이에요. 딱 2주뿐인 방학 기간 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고 싶었지만, 강한 눈발과 얼음비(freezing rain)이 번갈아 오면서 길이 꽁꽁 얼어 운전하기 무서워지더라고요. 그래도 집에서 방학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눈발을 헤치며 수도 오타와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몬트리올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몬트리올에 있는 현대 미술관을 둘러볼 생각으로 향하고 있는데, 몬트리올 공연 예술 극장에서 하는 전시회가 보였어요. 편의점 하나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으로, 모든 것을 종이로 만든 베이커리였어요. 그 발상이 매우 신선해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종이 예술의 세계로 함께 가볼까요?
전시회를 주최했던 곳은 Place des Arts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다목적 복합 문화센터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연말연시가 되면 호두까기인형 등 공연을 보는 가족 전통문화가 있는데요. 저희도 늦게서야 예매하려고 했더니 비싼 가격 치고는 좌석 위치가 너무 뒷부분이라서 포기했어요.
종이 예술이 선보인 공간이에요. 지하 쇼핑몰에 있는 스토어 하나 정도 되는 크기로, 전체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더라고요. 전시회는 12월 3일부터 1월 8일까지 연말연시에 여는 특별 전시였어요.
몬트리올이 있는 퀘벡 주는 불어권 지역입니다. 모든 도로 표지판과 안내 게시판, 상호 등이 불어로 되어 있어요. 전시회에 들어서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싶었지만, 팸플릿부터 안내판까지 모두 불어로만 쓰여 있어 마치 프랑스에 와 있는 기분이 들더군요.^^;;
불어로 쓰인 팸플릿과 웹사이트를 정신없이 오가면서 요정의 침입(Quand les lutins s'en mêlent)의 줄거리를 희미하게(?) 파악해 아래 짧게 나눠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다양한 장식으로 꾸민 마을의 상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화려했지만, 그 안에 기쁨이 없었어요. 그 마을에 사는 Oziaz라는 가난한 제과제빵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쉴 새 없이 케이크와 과자를 만들어 내놓았어요.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찾아와 물건을 사간 고객들이 빵이 맛이 없고 단단하며, 심지어 양말과 열쇠를 빵 속에서 발견했다면서 항의를 하게 됩니다.
가난했던 Oziaz는 이제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좌절한 순간, 자신의 베이커리에서 이상한 작은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내 일을 망치고 나를 바보로 만들었어!" 화가 난 Oziaz는 범인을 찾기 위해 밀가루 자루 사이에 몰래 숨어 있다가, 작은 엘프를 발견하게 됩니다. 엘프(elf)는 귀가 뾰족하고 마술을 부리는 요정이에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산타 할아버지를 돕기도 하지요.
베이커리 곳곳에 손전등으로 비추면 숨어 있는 엘프가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숨은 그림 찾기 놀이 하듯이 탐정 놀이하듯이 재미있어했어요.
Oziaz가 엘프들을 잡으려고 하자 혼비백산을 하며 뛰어다녀 베이커리를 엉망으로 만든 채 숲 속으로 도망갑니다. 그들을 쫓아간 Oziaz는 그곳에서 수백 마리의 요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숲 속 한가운데에는 조명으로 모닥불 형상을 만들었는데요. 조명 모닥불이 계속 돌면서 주변에 서 있는 종이 나무에 빛을 비추면 눈에 보이지 않던 엘프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듯이 보이더라고요. Ozaiz는 엘프의 초록 눈에서 나오는 요염한 빛에 홀려 '기쁨'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고 그들과 친하게 되어 자신의 베이커리에 초대하게 됩니다.
엘프들은 Oziaz를 도와 서커스를 하듯이 베이커리 주방을 오가며 수십 가지의 베이킹을 합니다. 오븐에서 빵, 타트, 과자 및 케이크 등 상상할 수 없는 숫자가 나왔어요. 엘프와 인간의 솜씨가 만난 작품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3층 케이크예요!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종이, 골판지, 카드 보드지만 사용해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모형이 저절로 연상될 만큼 자연스러웠어요.
전시회 곳곳에 놓인 테이블마다 종이 모형 케이크와 파이, 컵케이크 등이 가득했어요.
종이로 만든 작품들은 밑부분이 테이블 위에 고정된 상태였는데요. 약 한 달 간의 전시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기였고 제가 머무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꽤 들락날락하면서 만져보기도 했지만 손상이 간 작품들이 없어서 좋았어요.
전시회 한쪽 공간에는 자신만의 엘프를 직접 그리고 색칠해 전시회장 곳곳에 자유롭게 걸 수 있도록 준비돼 있었어요.
아이들이 완성해놓은 엘프마다 개성이 가득가득하네요. 이야기 속 엘프처럼 엉뚱하고 장난스러운 느낌도 나고요.
요정과 Oziaz의 손길을 거쳐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진 케이크와 빵은 베이커리 창문 앞에 전시됐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빛났던 것은 그 옆에서 잠이 든 Oziaz의 얼굴에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행복한 미소였어요. 이날 이후, Oziaz는 자신의 작업에 새로운 풍미를 더하는 일에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신의 인생에 마술 같은 기쁨을 불어 넣어줬던 엘프의 귀한을 기다리며 설레게 되었다는 말로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가장 매출이 높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실망과 비난으로 가득 찬 고객과 엉망으로 된 가게에서 좌절한 가난한 제과제빵사에게 엘프는 얄궂은 장난으로 다가갔지만, 결국 Oziaz가 자신의 일에서 느끼는 기쁨과 열정, 기분 좋은 미래를 꿈꾸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운 거였네요. 그로 인하여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지만 즐겁게 보고 왔어요. 내 인생을 침입해 줄 나만의 엘프를 기대해보면 저 역시도 주어진 자리에서 열정을 가지고 하루를 열심히 채워가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함께 파이팅!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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