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서양 마트에서 발견한 한국 설날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다

중국 춘절은 있고, 한국 설날은 없다?

 

한국 마트나 서양 마트나 시즌제 상품과 세일 상품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전시해 소비율을 높이는데요. 이맘때쯤 서양 마트에 가면 밸런타인데이 관련 상품을 마트 입구와 계산대 주변에 진열합니다.

 

며칠 전 장을 보기 위해 주로 다니는 서양 마트에 갔는데, 다른 해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바로 Chinese New Year 컨셉으로 실내 장식을 해 두었더라구요. 매번 이맘때 그러긴 했지만, 올해는 유독 더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 사시는 동포들은 아마도 많이 느끼셨을 거라 생각되네요. 한국의 고유 명절인 설날이 중국 춘절(Chinese New Year)에 가려진다는 사실. ㅠㅠ

'아메리카 하면 미국', '유럽 하면 영국 혹은 프랑스'가 떠올려지는 것처럼, '아시아 하면 중국 혹은 일본'이 먼저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캐나다로 온 아시아 이민자 중 중국인이 많고 중국의 최대 명절이 춘절(음력설)이다 보니, 매출을 위해 다가오는 음력설 타겟 고객을 중국인으로 삼은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마케팅 담당자가 괜히 얄미워집니다.

 

그럼, 캐나다 서양 마트에서 음력설을 맞이해 어떤 제품을 파는지 살펴볼까요?

 

전형적인 캐나다 서양 마트인 Lablow's 입니다. 하지만 서양 마트중에서 Lablow's 계열 마트에는 중국 상품이 유독 많은데요.  2009년 7월에 대만인이 운영하는 중국 마트 T&T를 인수했기 때문입니다.

서양 마트인 Lablow's와 중국 마트인 T&T가 상부상조하나 봅니다. 중국 마트 T&T에서 보던 중국 상품이 음력설을 앞두고 서양 마트 Lablow's에 많이 들어와 있었어요. 

 

마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띄는 용 실내장식입니다.

 

용뿐만 아니라, 마트 입구에 중국 실내 장식을 천장 여기저기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중국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립종 쌀, 마늘, 생강 등을 마트 입구에서 기존 판매 가격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어요.

 

이 사진만 언뜻 보면, 서양 마트가 아니라 중국 마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 -;

 

딱 보시면 알겠지만, 이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아시아계열 이민자보다 캐나다인이 더 많습니다.

 

중국 사자 인형도 상좌를 차지하고 있네요.  

 

용과 사자 인형뿐만 아니라, Chinese New Year 세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어요.

 

중국인이 정말 자주 먹는 가지도 세일 중이었어요. 한국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품종의 가지인데요. 평소에도 중국 가지(Chinese eggplant)라고 판매되고 있어요. ㅜㅜ 

 

저를 더 울적하게 만든 건...이 사진부터입니다. 친숙한 로고와 제품이지요? 바로 농심 컵라면입니다. 그런데 농심 컵라면 위에 Chinese New Year이라고 씌어 있어요.ㅠㅠ 이것뿐만 아니었어요.

 

Chinese New Year를 맞아 마트 입구에 한가득 쌓아 놓고 세일 중인 김 상자입니다. 아이들 학교 도시락을 위해 김을 사는 캐나다인이 부쩍 늘고 있어요. 주식이 밥이 아니다 보니 김을 밥에 싸 먹지는 않고, 간식처럼 김만 먹더라구요.^^;;

김 상자에는 영어, 일본어, 한자가 적혀 있어요. 자세히 가서 보았습니다.

 

두둥! 상자에 Product of South Korea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습니다.ㅠㅠ 하지만, 쌓인 김 상자 위에는 Korean의 K조차도 없이, Chinese New Year 현수막만 있을 뿐이었어요.

 

빙그레 메로나입니다. 서양마트에서 유일하게 파는 한국 아이스크림이에요. 몇 년 전부터 팔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ㅠㅠ 다양한 맛별로 사서 쌓아 놓고 먹곤 하네요. 지금도 저희집 냉동실에 있어요.ㅎㅎㅎ그런데 한국 빙그레 메로나의 진열대 위에도 Chinese New Year 현수막이 있었어요.

 

Chinese New Year 현수막 밑에서 팔리고 있는 한국 상품은 농심 컵라면, 자연(수출용 브랜드) 김, 빙그레 메로나였습니다. 중국 상품은 마트 입구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진열되어 있었지만, 3가지를 제외한 다른 한국 상품은 평상시대로 국제식품 코너에 진열되어 있었어요.

 

마트 입구에서 Chinese New Year 맞이 세일중인 중국 소스, 캔 음식, 쌀 등입니다. 

 

중국 춘절에 많이 먹는다는 만두도 세일 중이었어요.

 

중국인은 lucky candy라고 춘절에 사탕 등 간식 선물을 주고받는 듯해요. 마트 입구에 중국의 다양한 사탕을 상자 채 갖다 놓고 무게로 재서 살 수 있도록 진열해 두었더라구요.

 

그 밖에도 중국 장식품과 복주머니 등을 팔고 있었어요. 작년 이맘때에는 못 보던 상품인데, 올해는 마트 입구에 한가득 진열해 두었더라구요.

 

중국 과자, 소스 등도 판매 중이었어요. 모두 마트 입구에 놓인 상품입니다.

 

캐나다 서양 마트에서 이렇게 많은 중국 춘절 관련 상품을 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중국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 자리에 한국 상품도 진열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언뜻 보기에도 캐나다 부부 같은데, 한동안 마트 입구에 있는 중국 관련 상품 진열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상품을 하나씩 꼼꼼하게 읽으며 물건을 고르고 있더라구요.

 

참고로, 음력으로 설을 쇠는 나라는 우리나라, 중국, 홍콩, 대만, 필리핀, 몽골,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있습니다. 이중 한국, 중국, 홍콩처럼 구정을 가장 큰 명절로 여기는 나라가 있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음력설을 쇠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만, 암튼 음력설을 지내는 나라가 꽤 됩니다.

 

하지만 캐나다 서양 마트에서는 중국 춘절(the Chinese New Year)의 모습만 보고 온 것 같네요. 고민을 잠시 하다가 용기를 내서 Lablow's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냈어요. 한국의 설날에 대해 소개하고, 한국의 제품이 중국의 춘절에 가려지는 것이 아쉽다고 썼습니다. 음력설을 쇠는 모든 나라를 위해 중국의 춘절(the Chinese New Year)이 아닌, 음력설(the Lunar New Year)이라고 쓰면 좋겠다고 적었어요. 공유할만한 긍정적인 답변이 오면 좋겠네요.

 

내년에는 음력설을 쇠는 나라가 중국만이 아니라는 것을 캐나다인이 알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구정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미리 인사드려요.^^ Happy Lunar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