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께서 퇴근하는 길에 빈 달걀판을 들고 달걀을 사기 위해 들리는 농가가 하나 있는데요. 자주 왕래하시면서 농가 주인과 친분이 어느 정도 쌓이자, 가족과 함께 방문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여쭤보았다고 해요. 농가 주인의 승낙 덕분에 가족과 함께 방문하게 되어,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평범하지 않았냐고요? 농가의 주인은 바로 '메노나이트'였습니다. '메노나이트?' 저도 그들이 사는 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처음 들어 본 말이었는데요. 메노나이트가 어떤 사람들인지 소개해볼까요?
16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였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와 유아 세례의 참 의미에 의문을 갖고, 초기의 청교도 정신을 이어가고자 종교 개혁에 가담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의 참 의미가 본인의 자유 의지와 신앙 고백이 없는 유아 세례에 있지 않다고 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신앙 고백과 함께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하는 '재세례신앙운동'의 중심에 메노 시몬스와 그의 신학을 따르는 메노나이트(Mennonites)가 있었습니다.
유아 세례를 주던 로마 가톨릭에 의해 1만 명 이상의 순교자를 낼 정도로 탄압을 받게 된 메노나이트는 네덜란드 중심에서 북유럽 등지로 흩어져 있다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과 캐나다로 왔다고 해요. 캐나다에 처음 정착한 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온타리오 주 남부에 주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메노나이트는 20만 명으로, 절반 이상은 매니토바 주 위니펙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메노나이트는 유아 세례 불인정, 비폭력주의, 평화주의, 공동체, 단순한 삶, 봉사와 섬김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로 인한 메노나이트 삶의 가장 큰 특징은 '현대 문명을 거부하는 생활방식'입니다. 메노나이트는 현대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 수도, 자동차, 전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예전 방식대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메노나이트가 사는 주택의 모습입니다. 메노나이트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말이나 마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집 앞에 주차 중인 자동차는 당연히 메노나이트 차가 아닌, 저희가 타고 간 차입니다.^^
집 뒤편으로 집주인이 소유한 널따란 농장이 있었는데요. 끝이 보이지 않는 크기였는데, 앞으로도 더 늘릴 계획이라 하더라고요.
집 주변으로는 널찍한 가축우리가 있었어요.
가축을 키우거나 농사를 지을 때도 현대식 농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요. 소나 말이 끄는 쟁기로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이 넓은 농장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물으니, 가족이 다 함께한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둘러보니 아이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예의상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저희가 차를 타고 내리자,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며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농장 주인을 제외하고, 아이들이 모두 맨발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수줍음이 정말 많아서 신기한 눈으로 저희를 관찰(?)하며, 방긋방긋 웃을 뿐 말을 잘 하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아기가 너무 좋은지 서로 안아보겠다고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요. 나중에 들어보니, 모두 엄마가 손으로 직접 만든 옷이라고 해요.
농장 주인이 집 바로 옆에 있는 가축 사육장을 소개해주었어요. 수 십 마리의 닭이 있더라고요. 이모부께서 평소에 사는 달걀이 여기에서 나왔겠군요.
닭, 오리, 돼지뿐만 아니라, 말과 소도 있었어요.
키우고 있는 말을 자주 타느냐고 물으니, 갑자기 큰아들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얼마 후 말과 함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어오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맨발 투혼으로^^;; 덕분에 가까이에서 말도 직접 만져보고, 말 타는 방법도 배워 보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둘째가 또 갑자기 사라지더니, 당일 아침에 태어난 새끼 돼지를 데리고 왔어요. 전 실은 귀여운 강아지도 만지지 못할 만큼 동물을 무서워하는데요.^^;; 화사한 햇살에 눈도 뜨지 못한 핑크빛 빛깔의 새끼 돼지가 참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은 뭐 하고 놀까 싶었는데, 마당 저편으로 놀이기구가 있더라고요. 다섯 개의 그네가 달린 제법 큰 크기였는데도 아이들 수가 많아서인지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 옆으로는 트램펄린도 있었어요. 서로 서먹해 하던 사촌 동생들과 메노나이트 아이들도 그새 친숙해졌는지 트램펄린에서 웃고 떠들며 함께 뛰어놀더라고요.
집 안도 구경시켜주었어요. 메노나이트가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집마다 당연히 있는 냉장고, 세탁기, TV, 전자레인지, 전기 포트 등 가전제품이 정말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요.
전기를 사용하게 되면, 자연 리듬을 잃어버려 자야 할 때와 일어날 때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요. 또한, TV, 라디오 등 현대 문물은 가족 간의 깊은 대화를 방해한다고 여기고요. 전화도 이웃 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줄어들게 한다고 여겨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거의 없어져 가도 불안 증세를 보이는데 말이지요.^^;;
양해를 구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요. 저희가 방문한 가정의 자녀는 딸 5명, 아들 4명으로 모두 9명이었는데요. 그 당시 임신 중이어서, 지금은 자녀가 10명이겠네요. 오른쪽 사진이 임신 중이었던 안주인과 이모님 모습입니다. 저희를 반겨 주시기는 했지만, 무척 쑥스러워해서 대화는 거의 하지 못했어요.
위 사진은 미국 여행 중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가는 길에 보게 된 마차인데요. 그때가 일요일 오전이어서 그랬는지, 검은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모는 마차의 행렬을 꽤 보았습니다. 저희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반갑게 인사해주더라고요. 아마도 메노나이트와 같은 성향이 있는 종교적 무리인 듯싶습니다.
제가 만난 메노나이트는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에서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생활 방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줍은 미소 속에 간직한 순수함은 제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꼭 이렇게까지 불편하게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요. 막연한 배척이 아닌,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거부하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삶의 가치가 분명히 있어 보였습니다. 전기, 수도, 자동차,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 없나 찾아가며 살아온 저이기에 메노나이트와의 만남은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5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초기 청교도의 정신을 변함없이 지키기 위해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메노나이트....그들을 통해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나는 무엇을 내려놓으며, 어떤 것을 실천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이 3.1절이네요. 캐나다는 우리나라보다 14시간이 늦은데요. 저도 내일 아침이 되면, 태극기를 문 앞에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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