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몽트벨로 가을길을 달리다
캐나다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100배나 크지만, 북극에 가깝다 보니 거의 남쪽에 인구가 거의 모여 있어요. 제가 사는 수도 오타와 역시 남쪽에 위치해있지만, 11월부터 4월까지 길고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야 한답니다. 긴 겨울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 월동 준비를 하듯이, 저희 가족도 5월부터 10월까지 매 주마다 근거리 또는 장거리 여행 떠나며 긴 겨울동안 곱씹을 추억을 만들곤 해요. 어디로 갈까 정하기 전에 항상 날씨부터 체크하는데 비가 오는 주말이었네요. 날씨에 제한을 받지 않는 박물관을 갈까 싶었지만, 오색향연의 단풍이 저를 부르더군요. 차 안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다 운치 좋은 곳으로 가서 따스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차에 몸을 실었네요. 비오는 날, 캐나다 시골길로 저와 함께 달려보실래요?
캐나다 수도 오타와는 오타와 강을 기준으로 영어권인 온타리오(Ontario) 주와 불어권인 퀘벡(Quebec) 주가 만나는 도시인데요. 오타와에서 퀘벡 주를 건너가려면 육로(무료)나 배(유료)를 타고 가야해서 저희는 페리를 탔어요. 사용요금은 편도 $9(8천 원)입니다.
페리를 타고 오타와(Ottawa) 강을 건너자마자 공원이 있어 잠시 산책을 했어요. 날씨는 흐렸지만, 물과 만나는 가을 단풍의 매력은 여전히 아름다웠네요. 주변을 둘러본 후, 퀘벡 주에서 단풍이 이쁘다는 몽트벨로(Montebello)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highway)를 1시간 정도 달렸어요. 캐나다 대도시에는 유료 고속도로가 몇 군데 있지만, 대부분 무료입니다. 달리는 동안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의 가을 풍경을 바라보느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시골길을 달리면, 캐나다 농장을 볼 수 있어요. 길가 쪽으로 소를 제법 많이 키우는 농장이 있어 딸과 함께 구경하려고 차에서 잠시 내렸어요. 제가 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고개를 돌리고 저를 한참이나 쳐다보면서 초점을 맞춰주더라고요. 저희는 소 구경을 했고, 소는 사람 구경을 했나 봅니다.ㅎ
가을 단풍이 가득한 산 밑에 작은 농장이 있었어요. 저 곳에 사는 사람은 가을 단풍을 보러 먼 곳을 가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기찻길도 보였네요. 캐나다 메이플 로드(maple road)를 따라 가을 기차 여행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짚을 돌돌 말아서 창고에 쌓아둔 모습이네요. 긴 겨울 동안 가축의 사료로도 쓰고, 우리 바닥에 깔아주는데에도 사용합니다. 캐나다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농장 규모는 우리나라보다 매우 큰 편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다양한 농기계와 대규모 저장시설로 소수 인력으로 농사를 짓는 편이에요.
저희가 목적지로 둔 곳은 Kenauk Nature 투어 안내센터였어요. Kenauk Nature는 무려 8천만 평 이상의 사유지에 60여 개의 호수로 이뤄진 자연 보존 지역으로, 캐나다 내에서도 개인 사유지 중에서 가장 큰 곳 중의 하나예요. 안내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유지 안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 비버, 사슴, 무스, 곰 등 자연 속의 동물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저희가 도착한 지난 주에 투어가 마감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내년 여름에는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겠네요.
할 수 없이 다른 목적지를 급하게 정하고 다시 차에 올라탔어요. 아쉬움을 달래주려는지 단풍이 가득한 산봉우리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멋진 광경을 보았네요. 온타리오 주는 대체로 평지라서 산을 구경하기 쉽지 않거든요.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작은 산들과 들판을 보니, 한국의 가을 시골길이 떠올라 금세 기분이 좋아졌어요.
단풍 여행에 비가 와도, 뜻하지 않게 여행 계획이 틀어져도 맘이 그렇게 상하지는 않았네요. 여행을 하다 보면, 변수란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시 음악의 볼륨을 높게 올리고, 가족과 즐거운 수다를 나누며 비 오는 가을날의 운치를 만끽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차를 멈추며 어딘가를 가리켜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칠면조(turkey) 3마리가 길가에 서 있더라고요. 사슴이나 곰은 아니었지만, 칠면조 역시 자연 속의 동물은 맞았네요. 근처의 농장에서 빠져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운전 중에 칠면조를 만나서 신기했네요.ㅎㅎㅎ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가던 중 보게 된 Fabrique Notre-Dame de Bonsecours 성당이에요. 단풍나무 사잇길로 보이는 성당의 모습이 멋스럽더라고요.
캐나다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시즌별로 그에 맞는 장식으로 집 안팎을 꾸미는 문화가 발달했는데요. 교회 앞에 짚더미 위에 올려진 호박과 허수아비가 놓여 있어, 가을 여행의 운치를 한결 더 업그레이드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드디어 19세기 캐나다 국립 역사 사이트(Manoir Papineau National Historic Site)에 도착했어요. 안내 센터 앞에 놓인 수레를 자연스럽게 꾸며놓았는데요. 큰 바퀴를 보니, 저 수레에 걸터앉아 있고 싶어지더라고요.>.<
국립 문화 유적지 앞에 놓인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 6.25전쟁에 참가해 전사한 캐나다 군인을 기념하는 전쟁 기념비가 있었어요. 캐나다 어디를 가나 이와 같은 전쟁기념비를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딸과 함께 잠시나마 묵념을 했습니다.
19세기 캐나다 정치인의 사유지와 저택이 보존된 국립 문화 유적지에서 가을날의 운치를 한층 더 깊게 누리다 왔네요. 때론 내 삶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지라도, 그 길이 나에게 최고의 길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궂은 날씨와 뜻하지 않는 변수로 계획에 없던 곳을 다녀왔지만, 그곳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측하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과 추억을 얻을 수 있었네요. 모양이 다를 뿐, 내 삶의 행복과 기쁨은 항상 제 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의 행복을 진하게 누리시는 하루 되시길요.^^
'북미 볼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양지에서 즐기는 캐나다 가을 단풍 (39) | 2016.10.24 |
---|---|
[캐나다 몽트벨로] 19세기 국립 문화 유적지 찾아가다 (30) | 2016.10.20 |
호수와 단풍을 함께 품은 캐나다 가을 정취 (25) | 2016.10.13 |
빨간 단풍의 나라, 캐나다 가을 색을 담아보다 (34) | 2016.09.30 |
세계문화유산 캐나다 올드 퀘벡 야무지게 여행하기 (30) | 2016.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