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초상화가를 통해 얻은 용기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서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가 특별전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어요. 6월부터 전시가 시작되었는데 자꾸 미루다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찾아갔네요. 베르사유 장미를 든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모습을 보러 함께 가볼까요?^^  


오타와 소재 캐나다 국립 미술관


캐나다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Canada)입니다. 65,000여 점의 명성 있는 작품을 보유하고 있어, 프랑스 루브르와 미국 메트로폴리탄에 이어 세계 3위를 선전하고 있어요. 

국립 미술관 앞에는 9m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형물이 있는데요. 프랑스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으로, 작품명은 마망(Maman, 엄마)입니다. 거미 조형물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스페인 빌바오, 쿠바 하나나, 일본 도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한남동 삼성 리움 미술관에도 있어요.


미술관 특별 전시


특별 전시관 입구 모습입니다. 특별전 티켓은 성인 1명 당 $16(15,000원)이었어요. 


캐나다 국회의사당


특별 전시관이 있는 중앙홀은 천장까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탁 트인 전망을 가지고 있어요.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건물은 캐나다 국회의사당(Parliament of Canada)입니다. 올해 초 특별전이었던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Monet) 전시회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했는데, 이번 특별전은 몇 개의 작품을 제외하고 사진 촬영이 가능했어요. 유명한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초상화가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초상화가의 모습입니다. 18세기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였던 그녀의 삶을 짧게 살펴볼까요?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랭(Elisabeth Vigée-Le Brun, 1755~1842)


교수이자 화가인 루이스 비제(Louise Vigée)의 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랭은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18세기에는 여성이 공식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는 것도 금지되어 여성이 화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초상화에 실력이 뛰어난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랭은 프랑스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점점 명성이 높아져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초대를 받아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 왕실 가족을 그리게 됩니다. 이후 왕비의 총애에 힘 입어 그 당시 초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로 불가능해 보였던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 들어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어요. 이후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를 떠나 러시아, 이탈리아, 헝가리, 영국, 스위스 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왕실 및 귀족의 초상화를 계속 그려내며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1810년 경에 프랑스에서 돌아와서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가 총 600여 개의 초상화와 200여 개의 풍경화를 남기고, 1842년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랭


1783년에 오귀스탱 파주(Augustin Pajou)가 만든 초상 화가의 두상 조각품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입니다. 조각상 뒤로 베류사유 궁전의 공연장이 그려져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


궁중복을 입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78)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빈 미술사 박물관의 소장품입니다. 작품을 더 소개하기 전,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범치 않았던 삶을 잠시 소개해볼까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리지아의 막내딸로,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1770년에 14세의 어린 나이로 프랑스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했고, 1774년에 프랑스 왕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로 재위하는 동안 1789년에 혁명군에 의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당한 남편 루이 16세의 뒤를 따라, 38세의 생일을 2주 앞둔 같은 해 10월 16일에 단두대에 의해 참수당했습니다. 사형 죄목 중에 반혁명 이외에도 베르사유궁전에서 온갖 사치를 부려 국고를 낭비한 죄목도 있었는데요. 오랫동안 프랑스의 적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함이라는 일설도 있습니다.  


슈미즈 드레스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초상화 중 논란이 되었던 슈미즈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in a chemise dress, 1783)입니다. 문제가 됐던 이유는 왕비의 드레스 때문이었어요. 18세기 당시 여성들은 다양한 보조 기구가 달린 의류로 배와 허리를 졸라매고 치마를 좌우로 넓히는 옷을 입었는데요. 하지만 여왕이 입은 모슬린(muslin)으로 만든 슈미즈 드레스(chemise dress)는 그 당시 속옷이나 잠옷의 형태로 리에 이음선이 없이 일직선으로 내려온 폭이 넓은 드레스였습니다. 왕실의 권위에 맞지 않은 데다가 수입 면직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왕비의 모습에 대중이 충격을 받게 되자 공개한 그림은 빠른 시간 안에 철수되었습니다.


장미를 든 마리 앙투아네트


장미를 든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with a Rose, 1783)로, 베르사유 궁전과 트리아농 국립 박물관 소장품입니다.  슈미즈 드레스를 입은 여왕의 모습에 국민들이 충격을 받자, 왕실의 격식 유지와 프랑스 실크 산업의 독려를 위해 실크로 만든 궁중복을 입은 여왕의 모습을 다시 그려 한 달 후에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의상만 다를 뿐, 왕비의 포즈와 구도가 거의 같은 이유입니다.   


프랑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Marie-Antoinette and Her Children, 1787)로, 현재 베르사유 궁전과 트리아농 국립 박물관 소장품입니다. 왕비와 자녀들의 실물 크기로 그린 275 X 216.5cm의 초상화입니다. 인기가 점점 없어져 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은 여왕의 초상화가에게도 중요한 과제였는데요. 왕조를 이어가는 엄마로서의 존재감을 강조하여 그린 작품입니다. 실제로 루이 16세 왕의 성적 문제로 7년 동안 자녀가 없다가 치료받은 후 4명의 자녀를 낳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11개월 된 Sophie 공주가 죽게 되어 그림에는 빈 아기 침대와 3명의 아이만 보이네요. 아기 침대의 커버를 들고 있던 Louise Joseph도 2년 후에 골결핵에 걸려 죽게 되었어요.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


오디오 가이드(Audio Guide)도 유료($6)로 제공 중이었어요. 작품 옆에 적힌 번호를 입력하면, 작품에 관한 세부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도움이 됩니다.


국립 미술관 시청각실


특별 전시관 안쪽에는 시청각실에서 화가의 일생을 담은 DVD를 보여줬습니다. 


프랑스 왕실 드레스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왕과 왕비의 드레스를 관람객에게 차례대로 입혀가면서 설명해주는 특별 이벤트도 진행되었어요.


미술관 이벤트 18세기 의상 입기


특별 이벤트가 끝나고 자유롭게 왕과 왕비의 드레스를 입고 사진 촬영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한동안 북적거렸답니다. ㅎㅎ 


캐나다 국립 미술관 외부 전망


미술관 카페에서 보이는 외부 전망입니다. 다운타운 전망대인 니피안 포인트(Nepean Point)와 캐나다 국회의사당, 미술관의 정원에 놓인 예술작품 등이 한눈에 다 보여요.  


미술관 기념품 가게


미술관 내 기념품 가게에서는 특별전과 관련된 기념품들이 판매 중이었어요. 책, 엽서, 그림, 필기구, 노트, 티셔츠 등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여성은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소질을 키워 나가고, 역사화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했던 화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초상화로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왕비의 초상화가가 된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랭의 삶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일이 많다면서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만 하며 그 시작을 자꾸 미루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어요. 실력뿐만 아니라 미모도 상당하여 많은 관심과 염문설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평판을 훼손당하지 않도록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를 돌아보고 절제하면서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한 삶을 살았다고 해요. 남성 화가에게서 찾기 힘든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자신만 예술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 갔던 그녀의 인생을 보면서 내 안의 꿈들을 이룰 용기를 내봅니다. 꿈꾸고 있는 일이 있다면, 내 안의 용기와 능력을 믿고 힘차게 도전해보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파이팅!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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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 T. Juli 2016.09.16 10:04 신고

    비운의 여왕이지만 그녀의 모습은 참 아름답군요.
    여러 물건이 참 곱고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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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6 12:41 신고

      외모가 예쁘고 활발하여 작은 요정이라고 불렸다고 하더라구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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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eiking11 2016.09.16 11:05 신고

    모든 예술 작품이나 유적지에는 설명이 있어야 더 많은 감동을 얻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어가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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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6 12:43 신고

      감사합니다^^ 남은 연휴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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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수래공수거 2016.09.16 14:37 신고

    사진이 너무 생생해서 직접 보는듯합니다
    덕분에 앉아서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합니다
    비제 르 브랭에 대해서도 잘 알고 갑니다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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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8 19:09 신고

      감사합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해서 저 역시 집에 와서 다시 여유롭게 볼 수 있어 좋았네요. 새로운 한 주, 후유증 없이 가뿐하게 시작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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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강줌마 2016.09.16 18:55 신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보니 예전 어릴 때 보았던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가 생각이 나네요.
    즐거운 추석은 보내셨나요? 저는 명절이 끝나면 매번 몸이 힘들었어요. 드디어 오늘 회복했어요. 꾹 누르고 갑니다. 풍성한 추석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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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8 19:10 신고

      그래도 주말 동안에 컨디션을 회복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늘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새로운 한 주도 파이팅!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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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erjun 2016.09.16 20:30 신고

    멋진 화가네요... 이미 이 시기에 화가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라는 게 증명이 되는 것 같아요.
    의지력도 굉장할 듯 싶고요.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하면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는데...저도 오래전 베르사유궁을 관람했던 적이 있었네요.
    당시 그리 감흥적이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아요.

    초상화들이 대체적으로 화사하면서도 굉장히 섬세한 것 같네요.
    그림에 소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는데.... 그 생각이 다시 새록새록 올라오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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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8 19:12 신고

      피터준님 캐나다 빼고 다 가신듯요?ㅎㅎㅎ 저도 유럽 너무 가보고 싶어요!!!! 초상화는 그 당시 얼굴과 머리를 하얗게 꾸미는 게 유행해서 그런지...초상화도 얼굴에 초점이 많이 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말씀하신 대로 굉장히 섬세해서 저도 구석구석 꼼꼼하게 눈이 갔네요. 왕실이다 보니, 그외 배경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웠고요. 감기 얼른 나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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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의라라 2016.09.17 06:24 신고

    두가지의 그림이 포즈가 같은 이유가 그래서였군요. 위의 모슬린이 더 이쁜 것 같아요. ^^
    드레스 입어보는 체험은 꼭 해 보고 싶은데... 캐나다라서... ㅜ 언제 한번 입어보나~ ^^;;
    자신의 평판을 위해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했다는 여성화가 멋지네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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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8 19:15 신고

      저도 모슬린이 더 눈에 갔네요^^ 모슬린 드레스를 마리 앙투아네트가 유행시켰다고 해요ㅎㅎㅎㅎ그러게요 성공한 사람들은 확실히 다른가 봐요. 자신을 위해 끊임 없이 절제하며 노력했다는 모습이.....그림 솜씨보다 더 부러워 보였네요. 후유증 없이 활기찬 한 주가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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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뷰블효나 2016.09.17 19:30 신고

    서양음악전공자라 그런지 굉장히 익숙한 저 드레스들 *.* 아무리도 개인의 관점에서 글을 읽다보니...드레스만...보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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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8 19:15 신고

      오호~~ 효효효나님 얼굴도 이쁜데 이런 드레스 입음 엄청 어울릴듯요. 언제 사진 투척!? 해주시길^^ 오늘도 파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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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좁은유지니 2016.09.18 22:29 신고

    저도 영국 마담투소에 갔었을때 마리앙투아네트 보고 너무 놀랬어요. 어린아이가 의자에 누워 있는줄 알았어요.키도 굉장히 작고 어려보이더라고요. 물론 밀랍인형이라서 그럴 수 도 있지만 거의 비슷할 거라 생각하니 그대때 여성분들의 키가 저정도 되려나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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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9 05:45 신고

      밀랍인형이라도 해도 그곳에서 보셔서 색다른 감회가 있었겠네요. 이곳에서 영국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되어 그런지, 유럽 중에서 영국은 꼭 가보고 싶어요^^ 나눔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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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나르토드 2016.09.18 23:09 신고

    서양사 공부 잘 했습니다. 저 시대 초상화는 거의 사실을 위주로 한 사진술 가까운 줄 알고 있었는데, 화가의 의도에 따라 그림을 그렸었군요..

    블머 단톡방은 어찌 되고 있는지 궁금한 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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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iss :) 2016.09.19 05:47 신고

      그러게요^^ 사실화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신문기사용 사진이나 포토샵 후 사진으로도 꽤 활용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ㅋㅋㅋㅋ 단톡방 얼른 오셔야할 듯요ㅎㅎ 팁이 넘쳐 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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