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우호 증진과 세계 평화 이바지를 위해 설립한 국제 유스호스텔은 현재 94개국이 회원국이 가입해 세계 각국에 총 6,000개 이상의 호스텔이 있는데요. 인종, 국적, 성별에 차별 없이 전 세계 젊은이들이 숙박 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라고 해요.
독일인 교사가 자연 체험을 위한 건전한 숙박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자신의 학교에 유스호스텔(1910~현재까지 운영)을 열기 시작하면서 이 운동은 유럽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 북미에까지 퍼지게 되었는데요. 캐나다는 1933년, 미국은 1944년에 국제 유스 호스텔 연맹의 정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우리나라는 1968년에 가입했습니다.
캐나다에는 전국 10개 주에 총 61개의 호스텔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19~20세기 교도소로 사용했던 건물을 유스호스텔로 개조한 곳이 오타와에 있어 다녀왔어요. 교도소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던 이색적인 유스호스텔의 투어를 함께 시작해 볼까요?^^
캐나다 수도 오타와 다운타운에 있는 오타와 교도소 호스텔(The Ottawa Jail Hostel)의 정문 모습입니다. 호스텔이 되기 전, 니콜라스 스트리트 교도소(The Nicholas Street Gaol)으로 불렸던 이곳은 100년 넘게 오타와 주요 교도소로 사용됐습니다.
호스텔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들어와서 찍은 측면 외관 모습이에요. 관심이 없이 지나쳤다면, 이곳이 교도소였던 곳이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 했을 것 같아요.
길 바로 건너편에는 다운타운 쇼핑의 중심지인 미국 노드스트롬(Nordstrom) 백화점과 리도 센터(Rideau Centre) 쇼핑몰이 있어서 좋아요.
유스호스텔 입구 모습입니다.
유스호스텔 입구 쪽 정원에 있는 형틀 모습이에요. 목과 손을 끼워 넣고 다리를 묶은 후, 매질할 때 쓰는 형틀이 있었는데요. 상징성으로 둔 것인지, 실제 사용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더군요. 호스텔이 교도소로 사용되었던 시기(1862년~1972년)가 적혀 있었어요.
프런트 카운터 모습이에요. 호스텔은 처음 와봤는데, 소박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더라고요.
프런트 카운터 앞에 있는 응접실이에요. 특이하게도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 자전거 설치대가 있더라고요. 아마도 주 고객이 자유여행을 하는 청년들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교도소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이에요. 벽이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어, 왠지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문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올가미가 매달려져 있는 사형 집행실 모습입니다. 이곳은 몬트리올 소속 국회의원 Thomas D'Arcy McGee을 암살한 Patrick J. Whelan의 교수형(1869년 2월 11일)을 시행하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1946년 3월 27일에 시행됐던 3번째 교수형이 이곳에서 시행된 마지막 교수형이었다고 해요.
사형 집행실은 그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된 상태로, 매일 오전 11시에 일일 투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호스텔이 오타와 다운타운의 주요 랜드마크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오타와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시라면, 잠시 둘러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사형 집행실이 있던 장소를 밖에서 본 모습이에요. 검은 사각형 부분이 교수형 시행시 문이 열리는 사형실 바닥입니다.
그 위에 커다란 하늘색 문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창문을 만들도록 설계해 첫 번째 교수형 시행시 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해요. 그 당시 오타와 인구 수에 비하면, 상당한 인파가 몰렸다는군요.
교도소였을 당시 수감실이었던 곳을 호스텔의 객실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왼쪽 사진은 수감실 문이 열린 모습이에요. 100여 년 전의 수감실(가운데 사진)과 비교했을 때, 천장의 전등을 제외하고 침대, 이불, 베개만 있었던 수감실 모습 그대로 객실로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오른쪽은 문이 닫힌 모습이에요. 안에 남편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안 비밀ㅋ
오른쪽 사진은 1X3m 크기의 수감실로, 1인용 침대 하나만으로도 꽉 찬 크기였습니다. 저녁(여름 7시/겨울 8시)부터 아침(여름 7시/겨울 7시)까지 밤 시간대에는 수감실 문을 잠갔다고 해요. 그 외 시간은 복도, 식당, 교도소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고, 노동을 해야 하는 죄수는 눈 치우기, 돌 깨기, 장작 패기, 시설 관리하기 등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 교도소는 1X3m 크기의 수감실 60개와 2X3m 크기의 수감실 3개, 6개의 독방이 있었다고 해요. 교도소로 사용됐을 당시, 죄수의 침실과 복도의 키는 교도관(Turnkeys)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 죄수의 키는 여성 교도관(Matrons)만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 죄수들이 사용했던 샤워실입니다. 호스텔로 운영 중인 현재는 조금 더 깔끔한 모습으로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깨진 유리 거울은 죄수들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화장실과 복도 등에 스테인리스 거울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수용실은 죄의 크기에 따라 숫자가 커지는 1~4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는데요. 숫자가 클수록 교수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사형수가 사형 집행실을 향해 걸어가는 소리와 교수형에 처할 당시의 소리가 들리는 거리였다고 해요.
투어에서 볼 수 없던 몇 곳은 Booking.com에 소개된 사진(아래 4장)으로 올려봅니다.
2인실 객실 모습입니다. 2X3m 이내의 수감실만 있었던 교도소였기에, 아마도 이곳은 교도관 등이 기거한 방이었거나 집무실 등으로 사용했던 곳이 아닐까 싶네요.
다인실 객실 모습입니다. 1인실보다 가격이 저렴한 다인실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게스트 중 소수가 캐리어에서 중요한 물품을 꺼내 가거나 캐리어를 통째로 가져가는 사람도 있으니, 외출 시 프런트 데스크에 캐리어를 맡기시면 좋아요. 민박집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내 몸, 내 자산 스스로 챙깁시다!
휴게실 모습입니다.
식당 모습입니다.
아이비 덩굴로 뒤덮인 건물 외관의 모습이에요. 지금은 참 멋스럽지만, 겨울이 되면 굉장히 스산한 기운이 돌 것 같았네요.
투어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커다란 문 앞에서 아이들이 무서워서 들어오지 못하고 자꾸 기웃거리기만 하더라고요. 아이들의 부모님은 서두르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려주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었네요.
공포 영화를 전혀 못 보는 저로서는 의도치 않게 사형 집행실까지 봤으니, 여러 감정이 얽혀 마음이 묵직해졌는데요. 게다가 이곳에 수감됐던 수감자의 최소 연령이 저희 딸과 동갑인 7살이더라고요. 딸 아이를 친구네 보내고 남편과 함께 와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상의 따스한 부분을 조금 더 보여주고나서 이곳을 함께 찾아와도 늦지 않을 것 같았어요.
1972년에 교도소 시설이 문을 닫게 됐을 당시, 이곳을 정부 기관 또는 공용 주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단 철거할 예정이었는데요. 빌딩의 역사적인 특징을 보존하자는 제안 등으로 인하여 교도소의 역사와 19세기 건축물의 중요성을 보존하기 위해 철거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국제 유스호스텔 연맹(Hostelling International)에서 이곳을 사서 교도소의 모습을 최대한 손상하지 않고 현재까지 호스텔로 사용 중이라고 해요. 이색적인 체험을 원하는 청춘이라면, 19~20세기의 교도소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드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선택의 자유는 자신의 양심,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해치지 않았을 때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곳의 한 구성원으로서 멋진 하루를 만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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