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적지에 드리운 가을의 운치

[캐나다국립사적지] 19세기 성당 폐허를 찾아가다

우리나라에서는 폐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북미에서는 폐허에 대한 호기심과 탐험심이 많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북미 도시 곳곳에 남겨진 수많은 폐허 중 일부는 국립사적지로 지정되거나 이벤트 장소가 되어 관광 명소로 인기가 많기도 해요. 오늘은 온타리오주에서 19세기 폐허로 유명한 캐나다국립사적지 로마 가톨릭 성당을 소개하고자 해요.

성 라파엘 성당 (St Raphael's Catholic Church Ruins)

건축입니다

1815년에서 1821년에 스코틀랜드 개척자들에 의해 건축된 성 라파엘 성당은 영국 식민지 당시 캐나다 영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가톨릭 성당 중 하나이자 어퍼 캐나다(Upper Canada)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교구의 중심지로 사용된 곳인데요. 1970년 화재 이후 거의 불에 타 폐허가 된 후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사 1999년에 캐나다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오타와에서 동남쪽으로 100km 떨어져 있는 윌리엄스타운(Williamstown)에 있어요.

성당입니다

현재 성 라파엘 성당은 목재 지붕과 탑이 사라지고 석조 벽돌로 쌓은 벽만 남은 상태였어요. 비가 올듯 말듯 흐릿한 날씨는 폐허의 분위기를 더 돋우게 했던 것 같아요.

석조 구조물만 남은 캐나다 성당

구조물입니다

주차장에 내려 정면과 마주한 모습이에요. 1821년에 완공된 성당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매우 커서 놀라웠네요. 1970년 대화재에 불탄 목조 지붕과 타워까지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였을 테지요.

현재입니다

폐허가 된 성당 오른쪽에는 현재의 성당이 기존 벽과 맞붙은 상태에서 지어져 있었어요. 교인들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당을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성당 건물은 눈에 거슬리지 않는 규모로 짓기로 결정한 결과라고 해요.

묘지입니다

폐허가 된 성당 왼쪽에는 상당한 규모의 묘지가 있었어요. 북미에서는 성당 바로 옆에 묘지가 있는 곳이 꽤 많아요.

화재로 소실된 종

종입니다

여름철에만 내부를 개방하고 성수기 시즌 7~8월에는 큐레이터가 있다고 해서 밖에만 둘러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어요.

화재입니다

입구에 놓인 종은 1970년에 발생한 화재에 불탄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어요.

화재로 소실된 성당 구조물 레이아웃

사적지입니다

입구에서 바라본 성당 내부의 모습이네요.

내부입니다

1970년 화재 발생하기 전의 화려했던 내부 장식은 모두 불타고 석조 벽돌로 쌓은 벽만 남았습니다.

페디먼트입니다

성당 맨 앞쪽에 위치한 성소 제단 위치에서 입구를 바라본 모습이에요. 건물 입구 위의 삼각형 부분인 페디먼트(pediment)와 바로 아래에 화재로 소실된 커다란 종이 폐허의 운치를 더해주는 듯했어요.

석벽입니다

대화재에도 살아남은 석벽의 견고함이 놀라울 뿐이었어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있을 창문을 통해 단풍나무를 고스란히 바라보니 묘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묘비입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건물을 끼고 한 바퀴를 둘러보기로 했어요. 교회 옆에 놓인 비석들을 살펴 보니 1800년대 묘비도 있더라구요! 묘비에 새겨진 글씨가 닳아져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있었고 지반의 변화에 따라 기우뚱하게 세워진 묘비도 많았어요. 우리나라와 다른 캐나다 장례 문화가 궁금하다면 이전 글을 참고하시길요.

성 라파엘 성당의 최초 건물 터전 (Blue Chapel)

기원입니다

묘비 사이에 명판이 하나 세워져 있어 살펴봤어요. 1821년에 성 라파엘 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 사용했던 블루 채플(Blue Chapel)의 터를 가리키는 명판이었어요. 1786년에 스코틀랜드 북부에서 알렉산더 맥도넬 (Alexander Macdonell) 주교가 약 500명의 교구민과 함께 맥도널드(MacDonald) 배를 타고 와 이곳에 정착한 후 1789년에 천장을 블루로 칠한 통나무 채플을 건축했다고 해요. 이 지역의 초기 정착자와 성당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수많은 묘비와 단풍나무

비석입니다

입구에서 건물을 끼고 90도로 돌자 성소 부분에 해당하는 둥근 모형의 석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성당 뒤편으로도 수없이 이어지는 묘비에 깜짝 놀랐네요. 그 와중에 곳곳에 심어진 단풍나무는 절정을 이뤄 아름다웠어요.

가을입니다

폐허가 궁금해 찾아왔는데 단풍나무들이 꽤 많아 단풍여행 온 기분이 들었네요.

단풍잎입니다

아기손같이 귀엽고 촘촘한 한국 단풍잎이 아닌, 어른 손 크기만 한 캐나다 단풍잎들.. 저마다 색깔이 달라 신기해서 찍어봤어요. 곱게 물든 단풍잎처럼 올해 가을이 흘러가나 봅니다.

세월입니다

폐허 외곽 벽을 둘러보기 위해 뜻하지 않게 묘비 사이를 걸어야 했는데요. 제가 봤던 묘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성당이 완공된 무렵인 1822년과 1830년에 태어나신 분들이더라구요. 낙엽 사이로 비석들을 보고 나니 덧없는 세월이 실감 나 괜히 센티해지는 것 같은...

1808년 건축된 주교의 사택

주교입니다

성당 바로 길 건너편에 독특한 건물이 보여 살펴보니 주교의 사택이 있더라구요.

사택입니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꽤 큰 사택이었는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은 폐가였어요. 보존을 위해 앞으로 공사를 시행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접근이 금지된 상태였네요. 성 라파엘 성당이 어퍼 캐나다에 있는 로마가톨릭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고 하니 주교의 사택 규모도 제법 큰 듯합니다.

가톨릭 초등학교

학교입니다

폐가가 된 주교 사택 바로 옆에는 가톨릭 공립 초등학교가 있었어요. 학교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단풍나무가 이 지역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듯했네요.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전 글을 참고하시길요.

역사입니다

주교의 사택에서 바라본 폐허 성당의 모습이에요. 화재로 소실돼 본래의 목적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덕 위에 세워진 성당 석벽의 실루엣은 목가적인 시골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약 200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초기 정착민과 성당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에 충분했던 것 같아요. 비가 막 내릴 것 같은 흐린 하늘 아래 낙엽과 묘비 사이를 거닐며 폐허가 된 19세기 성당을 마주하니 미묘한 감정들이 오가기도 했던 시간이었네요. 이외에도 숲속에 폐허로 남은 19세기 캐나다 발명가의 실험실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전 글을 참고하시길요. 따스한 흔적으로 채워진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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