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캐나다 정부의 일급 기밀 벙커를 찾아가다

캐나다 냉전 박물관(Diefenbunker)

냉전 시대(Cold War)는 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 끝난 이후 약 50년 동안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 관계를 형성했던 시기를 말하지요. 냉전 시대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자, 캐나다 정부는 핵 공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전국 주요 도시의 외곽에 벙커를 50개 이상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핵 공격을 받게 되면 통치와 재건을 위해 정부와 군의 주요 구성원이 모이는 긴급 정부인 셈이지요. 오늘 제가 소개할 벙커는 50개의 벙커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중앙 긴급 정부 본부의 벙커이자 대중에게 공개된 유일한 벙커입니다. 냉전 시대의 일급 기밀 건축물이었던 캐나다 정부의 비밀 벙커로 함께 가볼까요?

냉전 박물관 Diefenbunker 입니다냉전 박물관 홈페이지

저는 3번째 방문이라 익숙하지만, 지나가면서 보면 아주 작은 시골 창고처럼 보여요. 지하 벙커이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전체 규모를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벙커의 본래 이름은 긴급 정부 본부(Emergency Government Headquarters)이지만, 제2의 이름인 Diefenbunkers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야당이었던 자유당 정치인들이 그 당시 캐나다 13대 총리(1957년~1963년)였던 존 디펜베이커(John Diefenbaker)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어요.

캐나다 전역에 있는 50개 이상의 벙커는 주요 도시의 외곽에 있는 농촌 지역에 지어졌는데요. 제가 찾아간 벙커도 오타와 도심부에 있는 캐나다 국회의사당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Montgomery 농장에 지어졌어요. 바로 옆의 시립 도서관을 제외하고 지금도 여전히 휑한 농촌 지대였습니다.

미국 Mark 4 원자 폭탄입니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핵폭탄으로, 1945년 8월에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 폭격에 사용한 Mark 3 Fat Man 원자 폭탄과 거의 동일한 원리와 디자인으로 만들되 보다 안전하고 생산하기 쉽도록 재설계된 Mark 4 원자폭탄입니다. 1949~1953년 동안 무려 550개를 생산했다고 하네요.

벙커 터널입니다

양쪽 출입문과 이어져 있는 긴 터널은 벙커의 핵심 구조물 중 하나로, 핵폭탄의 충격이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완충되도록 설계됐다고 해요. 길이 115m, 무게 1,800kg, 두께 35cm의 음침한 터널이 주는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어요.

캐나다 벙커 건축 모형입니다

벙커 건축 모형입니다. 벙커의 규모는 대부분 지하에 2층 규모로 지어졌는데, 제가 방문한 곳은 연방 정부의 중앙 긴급 본부이다 보니 4층 규모로 전 지역의 벙커 중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벙커를 건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벙커는 1.8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폭발된 5메가톤 TNT 핵폭탄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어요. 약 2,500만 리터의 콘크리트와 5,000톤의 강철이 들었다고 해요.

벙커의 의료센터입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술실, 진료실, 의약품 창고, 입원실의 모습이에요.

소련의 스파이 모습입니다

실제 소련으로부터 파견된 스파이들의 행적을 전시해둔 공간이었어요. 그중에 영화에서 볼법한 매춘부 스파이도 있어서 놀라웠어요. 스파이 뒷면에 보이는 지도는 오타와에 소재하는 캐나다 국회의사당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의 받는 충격 범위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치과 진료실 모습입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치과 모습이에요. 핵폭탄만큼은 아니겠지만, 치통의 고통도 무시무시하지요. 그런데 치료하는 치과 의사의 머리가 없는 게 더 무서웠어요.^^;;

긴급 정부 시스템입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메시지 제어 센터의 책상, 전신 타자기 정비실, 군사 정보 센터, 긴급 라디오 센터의 모습이에요. 비상사태시 갖춰야 할 비상 시스템이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벙커의 카페테리아와 매점입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페테리아, 레크리에이션 공간, 매점, 냉장 창고 모습입니다. 카페테리아에는 20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도록 널찍하게 설계되었어요. 실제로 벙커로 운영했던 32년 동안 365일 내내 하루 4끼의 식사가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카페테리아 한쪽에는 당구대, 다트, 셔플 보드 등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었어요. 매점에는 1900년대 후반의 키켓, 허쉬 등 초콜릿과 담배 등의 제품이 진열돼 있었어요. 냉장 창고에는 벙커 전체 인원 535명이 7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음식을 보관하도록 설계되었어요. 일주일 후에는 군인이나 소방대원에게 지급되는 간이 식량(Meals Ready-to-eat, MERs)으로 대체된다고 합니다.

벙커 내 캐나다은행 금 보유고입니다

우리 나라의 한국은행처럼 캐나다의 각 금융기관을 통괄하는 중앙은행인 캐나다 은행(Bank of Canada)의 금 보유고로, 800톤의 골드 바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금 보유고의 문 두께가 보이시나요? 침대에 눕듯이 문 두께에 맞게 서 봤는데 제 몸보다 문이 더 두껍더라구요. 30톤의 무게와 4개의 잠금장치가 있어 문을 열려면 4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요. 정문 옆에 있는 동그라미 모양의 문은 보유고 안팎의 압력을 동일하게 만들 시 또는 핵폭발의 압력으로 정문이 열리지 않을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 문 역시 두껍고 무거워 문을 여는데 2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금 보유고는 건물 안 별도의 층에 별도의 건물을 따로 지은 형태로, 사방과 천장이 벙커와 분리된 별도의 벽을 가지고 있어 사면의 외벽을 따라 걸을 수 있었어요.

전시 내각 상황실입니다

전시 내각 상황실로, 핵폭발로 전시나 비상사태 등이 발생하였을 때 소수의 주요 각료를 선정하여 최고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게 하는 곳입니다. 자리마다 다이얼 전화기가 놓여있었고, 앞에는 큰 스크린이 있었어요.

벙커 회의실입니다

회의실입니다. 어릴 적 교실에서 보던 OHP가 중앙에 놓여 있어 반가웠고, 출입문 위의 벽에는 캐나다 6개의 타임존에 각각 맞게 시각이 맞춰진 시계가 걸려 있었어요. 때마침 생일 파티 서비스로 스파이 역할을 맡은 직원을 쫓아가면서 벙커를 탐험하는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흥미진진해 보여 친한 척하면서 참여하고 싶더라구요>.<

벙커 내 캐나다 총리 집무실 및 침실입니다

캐나다 정치 체제상 국가 원수의 권한은 영국 군주(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의 권한은 총리가, 국군통수권은 총독이 갖습니다. 위 사진은 비상사태시 총리를 위한 공간으로,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비서실, 총리 집무실, 침실, 욕실의 모습이에요. 총독을 위한 공간은 공개되지 않아 볼 수 없었지만, 비슷한 형태라고 합니다. 한정된 수용 공간이기 때문에 나라를 대표하는 총독과 총리라 할지라도 다른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친구와 가족은 동반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침대가 싱글 침대 하나만 놓였더라구요.

외무부 장관 및 공무원 사무실입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외무부 장관 사무실, 공무원 사무실, 데이터 서버 센터 모습, 비상 탈출구의 모습입니다.

냉전 시대 평범한 가정집 모습입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하여 사람들은 원자 폭탄의 두려움에 도심을 떠나 외각으로 이사해 집을 사거나 방사성 낙진 지하 대피소를 뒷마당에 만들기도 했다고 해요. 최악을 대비한 선택이었지만, 그들이 새롭게 바꾼 집은 평상시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평범한 가정집 그대로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원자폭탄의 두려움 속에서 그들이 꿈꾸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을 테지요.

벙커 기부금 상자입니다

캐나다 긴급 정부의 벙커는 1962년에 완공되어 1994년까지 계속 가동되었으며, 32년 동안 100~150명의 직원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했습니다. 1994년에 폐쇄되어 대부분의 집기 또한 철거되었다가, 1998년부터 냉전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비영리 자선 단체로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시설 유지와 보수를 위해 입장료와 별도로 기부금을 받고 있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부했더라구요. 북미의 기부 문화는 정말 열정적이고 대중적인 것 같아요. 박물관 관람 요금은 세금 별도에 성인 $14, 어린이(6-18) $8, 가족(5인) $40으로 다른 박물관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1994년에 캐나다 국립 사적지로 지정된 Diefenbunker는 캐나다와 세계 전역에서 냉전에 대한 관심과 비판적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두려움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두려움을 상대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간이었어요. 이러한 고통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긴장감이 있기에, 내게 주어진 평온한 오늘에 감사가 되네요. 캐나다 정부의 벙커 모습을 흥미롭게 보셨길 바라며 오늘 하루도 몸도 마음도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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